요즘 한국 경제라는 주제 아래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이 삼성자동차의 영업실적입니다. 삼성자동차와 관련하여 전에 쓴 글이 있어 아래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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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진영 자매님께서 생각거리(food for thought) 하나를 교회게시판에 소개하셨습니다.

 

기도하고 행동하라.”

 

이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건희 삼성 회장의 충고라고 합니다. 제가 전에 잠시 태권도를 배웠던 사범님의 가르침은 TBA: “Think Before Act”입니다. 장로님이신 분께서도 도장이 아닌 교회에서 가르침을 주셨더라면 건희 회장처럼 PBA: “Pray Before Act”라고 충고하셨으리라 믿습니다. TBA이든 PBA이든, 젊은이들이 급한 마음이 앞서서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까닭에 실수가 잦다는 사실이 인생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들로 하여금 이런 충고를 하지 않을 없게 하는 이유입니다. 아쉬울 것이 없이 자란, 참을성이 부족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아울러 이런 충고를 하는 분들의 내면을 조금 깊이 파고들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았던 연유로 낭패한 경험들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건희 회장이 생각하라라는 충고 대신에 기도하라 충고를 하게 됐는지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최대기업의 총수의 입에서 기도라는 주제가 쉽게 나올 있다는 것에서 저는 한국사회의 종교성을 발견할 뿐입니다. 한국사회가 무종교의 사회보다는 다원종교의 사회로 발전해 가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가늠할 있는 시금석이 충고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한국인들에게 결코 주제가 아닙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름대로 기도하고 삽니다. 자신들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지녀온 소원인 숙원이 있습니다. 숙원은 오랜 기도를 수반합니다. 급한 행동으로는 성취할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문어발식으로 경영을 확장해 오는 과정 가운데 실패한 사업들 중에 관심을 끄는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삼성자동차입니다. 건희 회장의 선친인 병철 회장의 숙원사업이 바로 삼성자동차였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1997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건희 회장이 숙원사업인 삼성자동차를 내려 놓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쉽게 것입니다.

 

건희 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기도와 행동은 앞바퀴와 뒷바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기도와 행동의 관계를 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로 설명한 건희 회장의 마음 어느 구석에는 어쩔 없이 내려 놓아야만 했던 자동차사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 지도 모릅니다.

 

자동차사업을 두고 오래 기도하고 기대 가운데 사업에 착수했던 건희 회장은 1년도 못되어 다시 장고하며 사업으로부터 손을 떼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사실에서 우리는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경영자의 수완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경영이라는 기도와 행동의 결과물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이에 대한 잠언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화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16:3). 기도하고 행동하라는 건희 회장의 충고가 맥락에서 주어진 것이라면 자동차사업에 대한 분의 미련이 극복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기도와 행동의 뒤안길에 자리한 실패를 들여다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 들여다 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일부 드러난 모습 가운데에는 위선과 가식으로 채색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 기승을 부리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과 실패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신앙고백(confession)에는 뒤늦게나마 깨닫게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기도하고 행동하라”—하나님께 너의 도모(圖謀) 행사(行事) 맡겨라. 건희 회장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면 건호 목사가 하는 것보다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친다고 하는 사실에서 저는 평신도가 기도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 기도하고 나서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와 행동은 앞바퀴와 뒷바퀴다.”

 

그런데 제게는 기도가 앞서고 행동이 뒤따르는 삶의 방식이 전륜구동(前輪) 방식의 자동차에는 맞는 비유이지만 후륜구동(後輪)이나 사륜구동(四輪) 방식의 자동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기도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엔진의 동력이 앞바퀴에 전달되어 차가 움직이면 뒷바퀴는 그저 따라가는 방식의 삶을 상징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신앙적인 방식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응답받아 행동이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분들의 마음 가운데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동하고 기도하는 후륜구동의 또한 신앙생활에서 무시할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지만 어제 우리가 알았던 하나님의 뜻이 오늘이나 내일도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변적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도록 부름받은 우리의 삶은 행동 반성(reflection on action) 없이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차는 전륜구동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인생도 그렇게 움직이길 바라지만 후륜구동의 삶을 살아야 때가 가끔 있습니다. 기도를 한다고 했는데 막상 행동 벌어진 결과는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이따금씩은 세파에 흔들리는 확신의 부족일 때도 있지만 잘못 기도하고 잘못 생각한 것이 드러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앙은 전륜구동이니까 그냥 그대로 가면 된다고 착각하고 밀어부치게 되면 결과는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지는 것이 됩니다.

 

언젠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아내 친구에게 Outer Banks 해변을 구경시켜 준다고 가족이 일일여행을 나선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생각하여 일정을 정하고 차로 출발하여 한참만에 마음에 드는 모래사장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가는 차들이 바닷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따라 들어갔다가 앞바퀴가 모래사장에 빠졌습니다. 전륜구동인지라 차는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고 마침 지나가던 차가 줄로 차를 엮어 끌어내 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거기서 오래 고생할 했습니다. 앞에 차들은 사륜구동(4x4)이라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차가 후륜구동만 되었어도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건 이후의 여행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돈이 들어도 4x4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갖게 사건입니다.

 

우리의 인생차가4x4이어서 전륜규동이어야 때와 후륜구동이어야 때를 가리지 않고 씽씽 달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때로는 전륜구동으로 운전하고 때로는 후륜구동으로 운전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행동하고 행동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전통의 오랜 경구 가운데 기도는 노동(행동)이요 노동(행동) 기도이다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이를 기도하고 행동하고 행동하고 기도하는 신앙의4x4 부르고 싶습니다. 또는 이를 기도-행동-기도라는 전통적인 유대인의 기도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대교의 식사기도는 식전에 기도하고 식후에도 기도한다고 합니다. 식사라는 행동이 감사하는 마음 안에서 거룩해지는 것이 바로 기도가 앞서고 기도가 뒤따르는 연유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주께 하듯”(골로새서 3:23) 하는 것이 되려면 행동 전과 후에 반드시 기도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차를 이제 신앙의 4x4 upgrade하시어 매사에 기도하고 행동하고 다시 기도하는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