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길고 지루한 비행기 여행 끝에 고향 땅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의 귀향으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제 마음을 반영하는지 인천공항으로 나서기 위해 14시간 전에 아틀란타에서 비행기를 탄 후 벗어 두었던 구두에 발을 넣어 보지만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수선한 마음의 가닥을 바로잡듯이 매인 신발 끈들을 풀고 공간을 넓히고서 앉은 자세가 오래된 까닭에 다소 부은 발들을 우겨 넣었습니다. 그리 개운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 비좁은 공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마음이 급한 뒷좌석 사람들의 움직임에 떠밀려 가다 보니 그래도 그런대로 걸을만했습니다. 역시 몸은 마음보다 생존이라는 현실 적응에 빠른가 봅니다. Check-in한 가방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려 긴장이 다소 고조되었지만 입국 수속과 세관 통과, 그리고 휴대폰을 빌리고 공항버스표를 구입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해서인지 어느새 제 마음은 다른 여행객들처럼 부지런히 목적지인 어머니 집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차창 밖의 풍경이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것이 되기 시작하고 퇴근 길 rush hour의 교통체증 현상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서울 생활을 되살려 주자 문득 제가 태어나 성장한 서울이 저의 귀향을 반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서울은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공항터미널에 마중 나온 제 동생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서 제 귀향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착각도 자유이겠지요. 제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환영인파가 몰려든 시간보다 두어 시간 전이었는데 아마도 그 분들과 같이 공항출구를 나서게 되었더라면 제 귀향의 느낌은 다소 우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저는 이 표현 속의 home을 그린빌에 남겨 두고 온 제 가족이나 교회 식구들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World Cup이나 Olympic 때마다 대한민국이라는 고향 땅이 제 가슴에 절실한 향수를 뿜어 내는 것이 결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땅이 바로 제 home country인 까닭입니다.

 

제 가족과의 반가운 상봉이 끝나고 긴 여행으로 피곤한 몸의 쉼을 얻기 위해 잠든 밤 사이에 비가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깨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분주한 소음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 저는 시인 주 요한이 <빗소리>라는 시에서 표현한 대로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 예민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아서 속살거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밤과 낮이 정반대인 고향 땅에서 제 몸의 시계가 미국 생활의 리듬을 따라 움직인 연유이겠지요. 아니면 여행 중 물을 너무 많이 마셔 화장실에 자주 가야 했던 까닭이겠지요. 어쨌든 전 그 빗소리에 담긴 고향의 환영인사를 주 요한의 시를 통해 들었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그런데 같은 밤 빗소리도 듣는 이의 삶의 처지에 따라 달리 들리는 법인가 봅니다. 윤 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는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 가서 사는 이방인 나그네의 착잡한 마음 듣는 밤 빗소리가 실려 있습니다. 다소 길지만 이 시의 전문을 아래에 옮깁니다.

 

()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제가 지금 쉽게 이 글을 쓰는 방은 자아를 구속하는 윤 동주의 비좁은 다다미 방이 아닙니다. 제 어머니의 오랜 바램 대로라면 제가 제 자아를 펼치며 한국교회를 위해 글을 쓸 작업실입니다. 창 너머에는 조그만 공원이 보이고 강을 건너 전철 한 정거장이면 제가 공부하던 신학교가 가까운 지척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방도 제게는 아직 남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I don’t feel I belong here. 목사란 슬픈(?) 천명 때문일까요?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어미) 집을 떠나 살도록 부름 받은 소명(calling, 창세기 12:1)이 있기에 무얼 바라는 건 없지만 홀로 침전하며 등불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다가올 아침을 끈질기게 기다려 봅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고향 땅의 반가운 환영외에는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 없습니다.

조국애가 투철했던 영원한 청년 윤 동주보다 비겁하고 부끄럽게도 오래 산 제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담긴 학비봉투의 의미를 이제서야 새삼 들먹이면 무엇 할 것이며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린 어릴 적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무엇 하겠습니까마는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제 가족들과 그리고 제 친구들과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지고 <또 다른 고향>으로 귀향을 하고자 합니다. 다시 윤 동주입니다. (이 시의 해석을 원하시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세요.)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밤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