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전통적으로 교회의 공간 개념은 성과 속의 구별이 확연하였습니다.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의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이들이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목적에 기타나 드럼을 사용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고 여겨 젊은이들의 찬양 모임의 본당 진입이 주일에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예배 단상에 목회자나 안수 받은 장로가 아닌 평신도가 올라 가는 것도 감히 생각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단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신발을 반드시 벗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이 신앙활동 이외의 다른 활동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거룩한 땅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선교 바자회를 갖는 것이 하나님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걱정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는 교회 건물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의 틀을 깨고 어느 여학교의 강당을 지어 주고 그 건물의 사용권만 행사했습니다. 미션 스쿨의 강당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큰 발상의 전환은 아니었지만 교회가 건물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고국방문을 통해 이보다 더 앞서 나가는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사시는 아파트는 어느 교회 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고 그 교회 이름의 아파트인데 8층짜리 이 교회의 빌딩은 1층부터 4층까지 그 교회 이름의 병원이고 그 위가 교회의 예배와 교육공간이며 교회 주차장이 평일에는 유료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병원이 마침 노인전문병원이라 연로하신 어머니가 걱정되는 제게는 조금 안심도 되고 반갑기도 하지만 영과 육을 치료한다고 하는 이 병원의 사업이 교회의 주된 사업이 되어 가고 정작 교회의 목회는 그리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교회의 병원 사업이 잘 되어 근처의 다른 병원도 인수한다고 하는데 구령사업도 의료사업과의 조화와 협력이 잘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월 30일에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제가 방문한 교회는 <열린 예배>라는 신개념으로 크게 성장한 <오륜교회>입니다. 높아진 교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특별히 교회의 다음 세대를 열어가기 위해, 젊음과 역동성이 넘치는 살아있는 예배를 추구하는 예배갱신 운동의 결과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주일에 외국어 예배를 제외하고도 7번이나 예배를 드리는 한국의 10대 건강한 교회들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라(창세기
이 예배의 설교 제목은 <쇠는 떨어지고 새는 날아오른다!>였습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은 무생물인 쇠처럼 우리 손을 떠나면 땅에 떨어지지만 영적인 생명이 있는 신앙생활은 생명체인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저는 교회의 문턱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으면 실족(失足)의 아픔이 있고 교회의 문턱이 낮으면 장족(長足)의 발전이 있다>. 이 날 마지막으로 부른 찬양 <고쳐주소서>는 저로 하여금 이런 기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교회의 문턱을 고쳐 주소서.
네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리라
병약한 몸과 상처난 영혼
지난 날의 그 모든 아픔들도
능력의 손으로 다 고쳐주리라
네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리라
짓눌린 마음과 조각난 꿈들
비바람에 파헤쳐진 삶의 자리도
사랑의 손으로 다 고쳐주리라
이제 택한 너희를 고쳐주리라
고쳐주리라
네 눈물 보았고 네 기도 들었으니
연약한 것 고쳐주리라
생명주리라 일으켜 주리라
못 자국 난 손으로 다 고쳐주리라
소망주리라 기쁨을 주리라
내가 너를 고쳐주리라


